중국사

당나라를 뒤흔든 대반란, 안사의 난

과거로의 초대 2025. 6. 3. 12:19

8세기 중반, 당나라의 융성은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일으킨 대규모 반란으로 인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안사의 난’이라 불리는 이 반란은 단순한 지방 군벌의 반란이 아니라, 당 제국 체제를 근본부터 뒤흔든 사건으로, 이후 중국사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반란의 배경

  • 제도 붕괴: 균전제와 조용조 같은 전통적 세금·토지 제도가 붕괴되며 농민 몰락과 유민 증가
  • 군벌 강화: 절도사 제도의 확대로 지방 군벌의 병력과 자치권이 비대해짐
  • 중앙 정치의 혼란: 양귀비 일가를 포함한 외척과 환관들의 권력 농단, 현종의 국정 소홀

당나라 안사의 난 당시 성문이 불타는 와중, 말 위에 오른 황제가 피란하고 병사들이 혼란 속에서 전투를 벌이는 장면

반란의 전개

755년, 절도사 안녹산은 양국충 타도를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켜 낙양을 점령하고, 이듬해 장안을 함락시킵니다. 그는 스스로 ‘연(燕)’ 황제를 자처하며 당나라에 맞섭니다. 하지만 당 조정은 위구르족과의 동맹을 통해 반격에 나서고, 내부에서 안녹산은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당합니다. 이후 사사명이 반란을 이어가지만, 내분과 암살로 결국 763년 진압됩니다.

안사의 난의 영향

  • 인구 격감: 반란 전 약 890만 호였던 인구가 290만 호로 급감
  • 부병제 붕괴: 모병제로 전환되며 율령 체제의 근간이 흔들림
  • 절도사 독립화: 이후 당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지방군벌 중심의 분열 지속

문화와 문학 속 안사의 난

이 반란은 당대 문인들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는 양귀비의 비극과 당 현종의 슬픔을 그리며, 혼란 속 황제의 연정을 절절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꼽힙니다. 오늘날까지도 안사의 난은 중국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내란 중 하나로 평가되며, 이후 당나라가 회복 불가능한 쇠퇴기에 접어드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당나라의 전설적 미인, 양귀비

 

당나라의 전설적 미인, 양귀비

양귀비(楊貴妃, 719~756)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인 중 한 명으로, 당 현종(玄宗)의 총애를 받았던 후궁입니다. 본명은 양옥환(楊玉環)이며, 서시·초선·왕소군과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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