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륙이 혼란에 빠졌던 오호십육국 시대, 전진(前秦)의 몰락 이후 북방은 수많은 이민족 정권들이 흥망을 거듭하는 시기로 접어듭니다. 이때, 몰락한 전연(前燕)의 왕족이었던 모용수(慕容垂)가 다시 일어섭니다. 그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연(燕)’이라는 국호를 다시 들고 나서며, 384년 후연(後燕)을 세웁니다.
모용수는 본래 전진의 황제 부견 휘하에서 복무했던 뛰어난 장수였습니다. 그러나 383년 비수대전에서 전진이 대패하자, 혼란한 정세를 틈타 하북 지역으로 진출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였고, 중산(中山)을 수도로 삼아 즉위하게 됩니다. 이 국가는 국호는 '연'이지만, 앞서 존재했던 전연과 구분하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후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초기의 후연은 강력한 군사력과 행정력을 바탕으로 북방 지역에서 빠르게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은 곧 고구려와의 충돌로 이어지게 됩니다.
특히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4세기 말, 두 국가는 국경을 두고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400년, 후연의 군주 모용성(慕容盛)은 3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합니다. 그러나 고구려군의 기민한 대응과 반격에 후연은 크게 패하게 되고, 요동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후연은 이후 점차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모용수의 사망 이후, 후계자인 모용보와 모용희가 연이어 왕위에 오르지만, 두 인물 모두 지도력 면에서 부족함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모용희는 사치와 방탕, 그리고 무리한 대외 원정으로 백성들의 불만을 키웠고, 국력은 점점 쇠약해졌습니다.
결국 407년, 내부 반란이 일어나고 마침내 후연은 무너집니다. 이 반란을 주도한 인물은 놀랍게도 고구려계 출신의 장수 고운(高雲)이었습니다. 그는 후연의 마지막 군주를 제거하고 새로운 국가 ‘북연(北燕)’을 세우면서, 후연의 역사는 약 23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됩니다.
'중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원의 북방문, 연나라의 부상과 고조선과의 충돌 (0) | 2025.03.28 |
---|---|
북위, 북방 기마 민족의 제국이 되다 (0) | 2025.03.22 |
진나라를 무너뜨린 환관, 조고(趙高) – 지록위마의 교훈 (0) | 2025.02.10 |
진나라, 중국 통일의 시작과 몰락 (0) | 2025.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