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14

당나라를 뒤흔든 대반란, 안사의 난

8세기 중반, 당나라의 융성은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일으킨 대규모 반란으로 인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안사의 난’이라 불리는 이 반란은 단순한 지방 군벌의 반란이 아니라, 당 제국 체제를 근본부터 뒤흔든 사건으로, 이후 중국사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반란의 배경제도 붕괴: 균전제와 조용조 같은 전통적 세금·토지 제도가 붕괴되며 농민 몰락과 유민 증가군벌 강화: 절도사 제도의 확대로 지방 군벌의 병력과 자치권이 비대해짐중앙 정치의 혼란: 양귀비 일가를 포함한 외척과 환관들의 권력 농단, 현종의 국정 소홀반란의 전개755년, 절도사 안녹산은 양국충 타도를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켜 낙양을 점령하고, 이듬해 장안을 함락시킵니다. 그는 스스로 ‘연(燕)’ 황제를 자처하며 당나라에..

중국사 2025.06.03

당나라의 전설적 미인, 양귀비

양귀비(楊貴妃, 719~756)는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인 중 한 명으로, 당 현종(玄宗)의 총애를 받았던 후궁입니다. 본명은 양옥환(楊玉環)이며, 서시·초선·왕소군과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불립니다.그녀는 뛰어난 미모뿐 아니라 음악과 무용에도 능했던 인물로, 당대 문화예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양귀비의 생애와 입궁출생: 719년, 촉(蜀) 지방 출신초기 생애: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 집에서 자람입궁 배경: 당 현종의 아들 ‘수왕(壽王)’의 부인으로 궁에 들어왔으나, 현종의 총애를 받아 도교 여관으로 출가한 뒤 후궁으로 다시 입궐귀비 책봉: 745년, 정식으로 귀비(貴妃)로 임명되며 양씨 일가가 권력 중심으로 부상안사의 난과 비극적 최후755년, 절도사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켜 ..

중국사 2025.06.02

한 장의 그림이 역사를 바꾸다 – 낙안의 미인 왕소군

왕소군(王昭君)은 중국 한나라 시기의 궁녀로, 뛰어난 미모와 재능에도 불구하고 한 장의 초상화로 인해 운명이 송두리째 바뀐 인물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고대 중국 궁중 사회의 부패와 제도적 모순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오늘날까지도 회자됩니다.초상화 한 장이 바꾼 운명한나라 원제(元帝)는 수많은 궁녀들 중 후궁을 고르기 위해 초상화를 보고 선택하는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궁녀들은 화공에게 뇌물을 주고 자신을 더 아름답게 그리도록 유도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왕소군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화공 모연수(毛延壽)는 그녀를 실제보다 못생기게 그렸습니다. 그 결과 왕소군은 황제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궁 안에서 이름 없이 지내야 했습니다.흉노로의 출가와 황제의 후회기원전 33년, 흉노의 선우 호한야(呼..

중국사 2025.05.30

중국 4대 미녀, 왕소군의 삶과 역사

왕소군(王昭君)은 중국 한나라 시기의 대표적인 미녀로,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으로 손꼽힙니다. 그녀는 단순한 미모의 여인을 넘어, 정치와 외교의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역사적 인물입니다. 특히 흉노와의 혼인을 통해 국경의 평화를 이끌어낸 그녀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됩니다.출신과 입궁본명: 왕장(王嬙)출생지: 형주 남군 (현재의 후베이성)입궁 시기: 한나라 원제(元帝) 시기, 기원전 1세기경왕소군은 뛰어난 재능과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었지만, 황제의 선택을 받기 위해 화공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범한 모습으로 그려진 초상화 때문에 궁중에서 외면받았습니다.흉노로의 출가와 정치적 의미혼인 시기: 기원전 33년혼인 상대: 흉노 선우 호한야(呼韓邪)기원전 33년, 흉노가 한나라에..

중국사 2025.05.29

달기, 구미호인가 요부인가? 은나라를 삼킨 여인

은나라(상나라)는 기원전 1600년경부터 기원전 1046년까지 중국 황허강 중류 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고대 국가로, 그 마지막 왕 주왕(紂王)은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폭군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곁에는 전설적 악녀로 알려진 달기(妲己)가 있었으며, 이 둘의 관계는 은나라 멸망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회자되었습니다.달기의 출신과 주왕과의 만남출신: 유소씨국(有蘇氏國)의 귀족배경: 은나라가 유소씨국을 정벌한 후, 달기는 포로로 잡혀 주왕의 후궁이 됨전환점: 주왕은 달기의 미모와 매력에 사로잡혀 그녀를 지나치게 총애하게 됨폭정과 악행의 상징, 달기포락지형(炮烙之刑): 달군 쇠기둥 위를 죄인이 맨발로 걷게 하는 잔혹한 형벌을 고안주지육림(酒池肉林): 커다란 술 못과 고기로 만든 숲에서 연회를 즐김충신 탄..

중국사 2025.05.27

황건적의 난 – 후한 말, 제국을 뒤흔든 민란

중국 후한(後漢) 말기, 피폐해진 민생과 부패한 정치가 불러온 대규모 농민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황건적의 난(黃巾賊의 亂)'입니다. 머리에 누런 천을 두르고 일어난 이들은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억눌린 민중의 분노를 대변한 세력이었습니다.반란의 배경: 종교와 절망의 결합시기: 184년 (후한 영제 시대)지도자: 장각(張角), 장보(張寶), 장량(張梁)이념적 기반: '태평도(太平道)'라는 종교 조직후한 말, 황제 권위는 외척과 환관의 권력 다툼 속에 무너졌고, 지방에서는 대토지 소유자들의 횡포로 소농들이 몰락했습니다. 굶주림과 질병 속에서 민중들은 새로운 희망을 갈망했고, 그들에게 다가온 인물이 바로 장각이었습니다.장각은 '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라는 경전을 바탕으로 병을 치료하고 민심을 얻었고, ..

중국사 2025.05.24

천하를 품은 제국, 한나라 – 유방에서 무제, 그리고 황건적까지

중국 고대 역사에서 찬란한 문화와 강력한 중앙 집권을 이룩한 왕조, 바로 한나라입니다. 유방이라는 시골 출신의 영웅이 혼란한 진(秦)의 멸망 이후 천하를 통일하고 세운 이 왕조는, 중국의 이름 '한(漢)'의 어원이 되었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아시아 질서를 주도했습니다.한나라의 건국과 발전건국 시기: 기원전 202년, 유방(劉邦)에 의해 창건구성 시기: 전한(前漢, BC 202~AD 8) → 신(新, AD 9~23) → 후한(後漢, AD 25~220)수도: 장안(前漢), 낙양(後漢)최대 판도: 한반도 북부, 베트남 북부, 중앙아시아 일부까지 확대제국의 질서와 문화유교의 국교화 – 동중서의 건의로 유교를 국가 통치 이념으로 채택관료 제도 확립 – 향거리선제와 태학 설치로 인재 등용 체계 정비장건의 서역 원정..

중국사 2025.05.23

혼돈의 시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 중국 대륙을 뒤흔든 135년의 격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는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 중 하나로, 304년부터 439년까지 약 135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북방의 유목 민족인 오호(五胡)와 다양한 한족 및 이민족 정권들이 중원을 분열시켜 16개 이상의 국가를 세운 시기로, 중국사의 다민족 국가 형성과 문화 융합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오호(五胡)란?오호: 흉노(匈奴), 선비(鮮卑), 갈(羯), 저(氐), 강(羌)이들은 후한 말기부터 서진(西晉) 시기까지 중국 내지로 이주하여 군사력과 정치력을 키웠고, 서진의 붕괴 이후 각지에서 독자적인 정권을 수립했습니다.십육국(十六國)이란?십육국은 문자 그대로 16개의 국가를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3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정권이 존재했습니다. 역사적 편의상 대표적인 16개 국..

중국사 2025.05.19

중국 북방을 지배한 유목 제국, 선비족

선비족(鮮卑族)은 고대 동아시아의 유목 민족으로,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만주와 요동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흉노의 쇠퇴 후 독립하여 세력을 확장했으며, 이후 중국 북부를 지배하는 여러 왕조를 세우며 동아시아 역사의 중요한 축을 형성했습니다.선비족의 기원출신지: 만주, 요동 지역주요 활동 시기: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6세기언어: 선비어 (알타이계)주요 국가: 전연, 후연, 서연, 남연, 북위, 북주역사와 발전선비족은 흉노의 쇠퇴 후 북방 초원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며 등장2세기 후반, 단석괴의 지도 하에 강력한 부족 연맹체를 형성하여 세력을 확장모용선비, 탁발선비, 우문선비 등으로 분화하여 각각 전연, 후연, 북위 등의 국가를 세움탁발선비가 세운 북위는 439년에 화북을 통일하..

중국사 2025.05.16

선비족의 제국 후연, 고구려와 충돌하다

중국 대륙이 혼란에 빠졌던 오호십육국 시대, 전진(前秦)의 몰락 이후 북방은 수많은 이민족 정권들이 흥망을 거듭하는 시기로 접어듭니다. 이때, 몰락한 전연(前燕)의 왕족이었던 모용수(慕容垂)가 다시 일어섭니다. 그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연(燕)’이라는 국호를 다시 들고 나서며, 384년 후연(後燕)을 세웁니다.모용수는 본래 전진의 황제 부견 휘하에서 복무했던 뛰어난 장수였습니다. 그러나 383년 비수대전에서 전진이 대패하자, 혼란한 정세를 틈타 하북 지역으로 진출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였고, 중산(中山)을 수도로 삼아 즉위하게 됩니다. 이 국가는 국호는 '연'이지만, 앞서 존재했던 전연과 구분하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후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초기의 후연은 강력한 군사력과 행정력을 바탕으로..

중국사 202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