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

진나라를 무너뜨린 환관, 조고(趙高) – 지록위마의 교훈

과거로의 초대 2025. 2. 10. 09:00

진나라의 몰락을 이야기할 때 환관 조고(趙高)의 이름은 결코 빠질 수 없다. 그는 단순한 궁정 관료가 아니라, 진나라 멸망의 결정적 원인이 된 간신이자 권력의 화신이었다. 그의 손길이 닿은 순간, 진시황의 강력한 제국은 무너지는 운명을 맞이했다.

조고, 환관이 되다

조고는 원래 조나라 왕족 출신이었다. 그러나 조나라가 진나라에 멸망당하며 그의 가문은 몰락했고, 그는 환관으로 삶을 이어가야 했다. 하지만 단순한 환관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법률과 행정에 능했으며, 특히 진시황의 막내아들 호해(胡亥)의 스승으로서 신임을 얻었다. 조고의 진정한 야망은 이때부터 꿈틀대기 시작했다.

진시황의 죽음과 조고의 음모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순행 중 사망하자 조고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는 승상 이사(李斯)와 공모하여 시황제의 사망 사실을 숨기고, 유서를 조작해 장남 부소(扶蘇)에게 자결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황위를 이어받을 자격이 없는 호해가 2세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고, 조고는 실질적인 권력을 손에 넣었다.

지록위마 환관 조고가 사슴을 말이라 하고 있다

지록위마, 권력의 광기

권력을 쥔 조고는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그는 정적을 제거하고 법을 강화하며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했다. 그의 전횡을 대표하는 사건이 바로 '지록위마(指鹿爲馬)'이다. 그는 신하들 앞에서 사슴을 끌고 와 "이것은 말이다"라고 말했다. 신하들은 두려움에 떨며 "예, 말입니다"라고 답해야 했다. 이에 반기를 든 자들은 숙청되었고, 이후 궁정은 조고의 독재가 지배하는 공간이 되었다.

진나라의 몰락과 조고의 최후

그러나 그의 폭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혹한 정책과 무리한 세금, 그리고 끝없는 토목공사에 대한 반발로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기원전 209년, 진승·오광의 난이 시작되며 진나라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이에 위기를 느낀 조고는 호해를 폐위시키고 자신이 황제가 되려는 시도까지 했으나, 결국 자영(子嬰, 진나라 마지막 황제)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

조고의 최후는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진나라는 그의 손을 거쳐 15년 만에 붕괴했고, 이후 중국은 다시 혼돈의 시대로 빠져들었다. 그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 간신과 권력 남용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