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견훤이 꿈꿨던 백제의 부활과 몰락

과거로의 초대 2025. 3. 18. 08:00

신라 말기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꿈꾼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견훤(甄萱). 그는 892년 무진주(현재의 광주)를 점령하며 독립 세력을 형성했고, 900년에는 완산주(현재의 전주)를 도읍으로 삼아 후백제(後百濟)를 건국하였습니다. 이로써 한반도에는 후백제, 고려, 신라가 공존하는 후삼국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성안에 왕이 중간에 있고 군사들이 사열하고 있는 모습

견훤, 신라의 장수에서 후백제의 왕이 되다

견훤의 출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는 신라의 하급 군인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의 군대에서 성장한 그는 점차 세력을 키웠고, 지방에서 반란이 잇따르던 시기에 독자적인 군사력을 확보하며 강력한 군벌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그는 백제의 옛 영토를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스스로를 백제의 계승자로 내세웠습니다.

후백제의 성장과 외교 전략

견훤은 군사적으로 신라를 압박하며 빠르게 영토를 확장했고, 동시에 고려의 왕건과도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는 국력을 키우기 위해 외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중국의 오월(吳越)후당(後唐)과 교류하며 외교적 입지를 다졌고, 일본과도 접촉을 시도하며 후백제의 위상을 높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고려와의 대립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습니다.

왕위 다툼과 후백제의 몰락

견훤은 강력한 지도자였지만, 후계 구도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결국 후백제의 몰락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넷째 아들 금강을 후계자로 지명하였으나, 이에 반발한 장남 신검이 935년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신검은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켰고, 결국 견훤은 고려로 망명하여 왕건에게 투항하게 되었습니다. 왕건은 견훤을 극진히 대우하였으나, 후백제는 이미 내분과 약화된 국력으로 인해 붕괴 직전이었습니다.

후백제의 최후와 고려의 통일

936년, 왕건은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남하하였습니다. 신검이 이를 저지하려 했으나 고려군의 조직적인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였고, 결국 후백제는 고려에 항복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로써 후삼국 시대는 끝나고, 한반도는 고려에 의해 통일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