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장수왕, 79년의 통치로 고구려 최전성기를 열다!

과거로의 초대 2025. 3. 19. 12:40

고구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군주가 있다면, 단연코 장수왕(長壽王)일 것이다. 그는 412년부터 491년까지 장장 79년간 재위하며 고구려의 영광을 이끌었다. 그의 본명은 거련(巨連)으로, 부왕인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방향으로 국가를 발전시킨 인물이다. 특히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하고 한강 유역을 장악하는 등, 남진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며 고구려를 동북아의 패자로 만들었다.

뒤로 건물들이 있고 중앙에 장수가 그려진 애니

수도 천도, 평양에서 펼쳐진 새로운 시대

장수왕의 가장 상징적인 정책은 427년 수도 천도였다. 기존의 수도였던 국내성(오늘날 중국 지린성 지안)에서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것이다. 이 결정은 단순한 행정 변화가 아니라, 보다 강력한 중앙집권과 대외 확장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평양은 한반도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기에 유리한 위치였으며,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남진정책과 백제의 몰락

장수왕의 남진정책은 백제와 신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475년, 그는 대대적인 군사 작전을 펼쳐 백제의 수도 한성(오늘날 서울)을 함락시켰다. 이 과정에서 백제 개로왕을 사로잡아 처형했고, 한강 유역을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시켰다. 이로 인해 백제는 수도를 웅진(오늘날 공주)으로 옮겨야 했고, 국력은 급격히 쇠퇴했다. 반면, 고구려는 한반도 중부까지 세력을 확장하며 삼국의 패권을 확실하게 거머쥐었다.

중국과의 외교 전략, 등거리 외교의 시작

장수왕은 외교적 감각도 뛰어났다. 당시 중국은 남북조 시대로 나뉘어 북위(北魏)와 남조(南朝)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그는 두 나라와 균형을 맞추며 외교적 이점을 극대화했다. 북위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북방의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남조와도 교류를 이어가며 고구려의 독립적 입지를 공고히 했다. 이러한 등거리 외교 전략은 고구려가 국제적으로 존중받는 강대국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장수왕의 유산, 고구려 최전성기의 문을 열다

장수왕은 그의 이름처럼 97세까지 장수하며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그의 치세 동안 고구려는 영토 확장, 정치 개혁, 외교적 안정 등 다방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백제를 한강 이남으로 몰아내고, 신라를 견제하며, 중국과도 능숙하게 외교를 펼친 그는 명실상부한 고구려의 황금기를 연 군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