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위만조선 -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와 역사적 전환점

과거로의 초대 2025. 3. 20. 08:00

기원전 2세기, 고조선의 역사는 중대한 변화를 맞이한다. 연나라 출신의 망명객 위만(衛滿)이 고조선에 들어와 새로운 왕조를 세우면서, 이른바 위만조선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한반도와 중국 간의 관계, 그리고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 도성을 배경으로 중앙에 장군이 있는 애니스타일 이미지

위만의 등장과 고조선 왕위 찬탈

당시 중국 대륙은 격변의 시대였다.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혼란이 계속되었고, 북방 유목 민족과의 갈등도 심화되었다. 이 와중에 연나라 왕 노관(盧綰)이 흉노로 망명하자, 그의 부하였던 위만도 1,0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피신했다.

위만은 고조선 준왕(準王)에게 투항하여 서쪽 변경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지만, 세력을 키운 뒤 기원전 194년경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준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으며, 스스로 위만조선의 초대 왕이 되었다. 그의 도읍지는 기존 고조선의 중심지였던 왕검성(王險城, 현재의 평양으로 추정)이었다.

위만조선의 발전과 국제 관계

위만조선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중앙집권적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위만은 자신의 세력을 기반으로 기존의 진번(眞番)과 임둔(臨屯) 등 주변 지역을 정복하며 영토를 확장했다. 동시에 한나라와의 교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한나라와 위만조선의 관계는 초기에는 비교적 원만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특히 위만조선이 한나라와의 중계 무역을 독점하며 주변 세력들이 직접 한과 교역하는 것을 차단하자, 한 무제(武帝)는 이를 빌미로 군사 개입을 준비하게 된다.

한나라의 침공과 위만조선의 멸망

위만의 손자인 우거왕(右渠王)이 즉위한 후, 한나라와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우거왕은 한나라 사신의 왕검성 출입을 차단하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에 한 무제는 기원전 109년 대대적인 원정군을 파견했다.

위만조선은 한나라 군대의 공격에 맞서 1년여 동안 치열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왕검성이 함락되며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은 멸망하고 만다. 이후 한나라는 이 지역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여 직접 지배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