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제19대 왕인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391년,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그는 동아시아의 정세를 단숨에 뒤흔드는 전쟁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고대 국가로 불리는 왜(倭)와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왜의 침입과 신라의 요청
4세기 말, 한반도의 남부는 평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신라는 왜의 지속적인 침략에 시달리며 국토의 안정은 물론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국력의 한계에 직면한 신라는 결국 북방의 강자,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에 응답한 이는 바로 광개토대왕. 400년, 그는 5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며, 신라를 위협하던 왜군과 정면으로 맞섭니다.
5만 대군, 남쪽으로 진군하다
광개토대왕의 군대는 왜군을 향해 전광석화처럼 움직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고구려군은 왜의 병력을 경주 일대에서 격파하고, 바다를 건너 도망가는 적을 끝까지 추격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전투는 단순한 방어전이 아니라, 고구려가 남한강 유역을 포함한 중남부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군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 그날의 전장을 증언하다
이 전쟁의 생생한 기록은 훗날 광개토대왕의 무덤 옆에 세워진 광개토대왕릉비에 남아 있습니다. 비문 속에는 “신라가 왜의 침입을 받아 고구려에 원병을 청했고, 왕이 이를 구원하여 왜를 물리쳤다”는 문장이 또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은 당시 동아시아의 권력 구도를 압축한 상징으로, 고구려의 군사적 위용과 정치적 입지를 웅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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