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고구려를 꺾기 위한 수나라의 4번의 도전과 그 실패

과거로의 초대 2025. 4. 18. 06:08

6세기 말, 중국 대륙을 통일한 수나라는 국경 너머까지 영향력을 넓히려 했습니다. 그 목표 중 하나가 고구려였습니다.

첫 침공은 598년, 수 문제의 명으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완강한 저항과 자연재해 등으로 수군은 큰 피해만 입고 퇴각하게 됩니다.

수나라의 침공을 막아내는 고구려 애니스타일 이미지

612년, 수 양제는 모든 것을 걸고 제2차 고구려 침공에 나섭니다. 동원된 병력은 무려 113만 명에 달했습니다.

수나라군은 음력 3월 15일 요하에 도달합니다. 탁군에서 출발한 병력이 모두 이동하는 데만 40일이 걸릴 정도였지만, 진군 속도는 매우 빨랐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며, 요하를 건너는 데만 두 달이 걸렸습니다. 병사들은 지치고 식량은 부족해졌습니다.

이후 수나라군은 요동성을 포위했지만, 한 달 넘게 이어진 공성전에서도 성을 함락하지 못한 채 음력 6월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을지문덕입니다. 그는 수나라군을 의도적으로 유인하며 시간을 끌었고, 적이 방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살수대첩을 표현한 애니스타일 이미지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적장 우중문에게 시를 보냅니다.

신묘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고,
오묘한 계산은 땅의 이치를 다하였으니,
전쟁에서 이긴 공이 이미 높도다.
만족할 줄 알고 그만두길 바라노라.

우중문은 철수를 결정했고, 고구려군은 살수(청천강)에서 기습을 감행합니다. 지친 수나라군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30만 대군 중 2,700명만이 살아 돌아갔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 전투는 바로 살수대첩. 고구려의 전술적 대승이자, 을지문덕의 이름을 역사에 각인시킨 전투였습니다.

수 양제는 이후에도 613년과 614년, 두 차례 더 고구려를 침공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내부 반란과 병참 문제로 더 이상 전쟁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결국 618년, 수나라는 멸망의 길로 접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