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찬란했던 발해, 그 시작과 끝

과거로의 초대 2025. 4. 29. 05:09

668년, 수백 년 동안 동아시아를 호령하던 고구려가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 사람들의 꿈은 쉽게 꺾이지 않았습니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던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대조영. 698년, 그는 동모산(東牟山) 일대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세우고, 새로운 나라 진(震)국을 건국했습니다.

훗날 이 나라는 국호를 발해(渤海)로 바꾸며 동북아시아에 다시 한 번 강대한 국가를 세우게 됩니다.

발해 건국 당시 대조영이 깃발을 들고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끄는 모습, 초원과 산을 배경으로 한 와이드 애니메이션 스타일 일러스트

발해의 영토와 세력 확장

발해는 오늘날의 만주 대부분과 한반도 북부, 연해주 지역까지 영토를 넓혔습니다. 특히 동해 연안까지 세력을 확장하면서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발해 사람들은 자신들을 고구려의 후예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수도를 정비하고, 왕실 제도를 마련하며, 중앙 관제를 갖추어 고구려 못지않은 문명을 이뤄갔습니다.

문왕 대흠무, '해동성국'을 이루다

발해의 최전성기는 3대 문왕 대흠무(文王 大欽茂) 시대에 찾아왔습니다. 문왕은 당나라의 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발해 고유의 전통을 지켰습니다. 그는 수도를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로 옮기고, 5경 15부 62주의 체제를 완성하여 지방 통치를 정비했습니다.

당시 발해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릴 만큼 동북아시아에서 융성한 나라였습니다. 당나라, 일본, 신라 등과 외교 사절을 주고받으며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

발해 상경용천부 궁전과 발해 귀족들의 일상 모습, 애니스타일

발해의 문화와 생활

발해의 문화는 고구려와 말갈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당나라 문명을 받아들여 매우 독특하고 풍부했습니다.

특히 발해의 불교 문화는 융성하여, 많은 사찰과 탑이 세워졌습니다. 또한 발해 귀족들은 당나라식 복장을 입었지만, 자신들만의 독특한 장식과 문양을 가미했습니다. 발해의 무덤인 '발해 고분군'에서는 고구려식 벽화와 함께 당나라식 석실 구조가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광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9세기 후반, 발해는 여러 차례 왕위 교체와 귀족 간의 권력 다툼으로 점차 약해졌습니다.

그 사이 새로운 강국, 거란(요나라)이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926년, 발해는 결국 거란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발해의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는 남쪽으로 이동해 고려로 편입되었고, 일부는 발해 유민 국가인 '후발해' 등을 세워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오늘날에도 발해는 "고구려의 뒤를 잇는 나라", "한민족의 역사"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