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와 당나라의 연합, 즉 '나당연합군'은 7세기 중반 동아시아의 권력 지형을 바꾼 중요한 동맹이었습니다. 이 연합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 통일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동맹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게 된 데에는 복잡한 배경이 있었습니다. 642년, 백제의 의자왕이 대야성을 함락시키는 등 신라를 압박하자, 신라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에 신라의 실권자였던 김춘추는 당나라와의 동맹을 추진하게 됩니다. 648년, 김춘추는 당나라를 방문하여 태종(이세민)에게 동맹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당나라도 동북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었기에 양국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 군사 동맹이 성립되었고 이는 곧 한반도 정세의 대격변을 예고했습니다.
백제의 멸망 (660년)
660년, 나당연합군은 드디어 첫 번째 목표였던 백제를 공격했습니다. 당나라의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대군은 바다를 건너 서해안으로 진격했고, 신라군 5만 명은 김유신의 지휘 아래 육로로 황산벌을 거쳐 북상했습니다.
이에 맞선 백제는 명장 계백이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결전을 벌였으나, 황산벌에서의 처절한 전투 끝에 패배하고 맙니다. 백제는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었고, 나당연합군은 사비성(지금의 부여)을 함락하여 백제 700년 역사의 막을 내렸습니다.
의자왕은 항복하여 당나라로 끌려가고, 백제의 많은 귀족과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고구려의 멸망 (668년)
백제가 무너진 이후, 나당연합군의 다음 목표는 고구려였습니다.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강력하게 나라를 지배하고 있었으나, 그의 죽음 이후 내분이 심화되었습니다. 이 틈을 노린 나당연합군은 668년 평양성을 함락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은 결국 항복하고, 이로써 한반도 북부의 강국이었던 고구려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나당전쟁과 신라의 독립 (670~676년)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는 한반도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웅진도독부(백제 땅)와 안동도호부(고구려 땅)를 설치했습니다.
이는 신라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결국 양국은 동맹을 깨고 적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670년, 신라는 당의 야욕에 맞서 본격적인 항전에 나섰습니다. 675년의 매소성 전투와 676년의 기벌포 전투에서 신라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당군은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이로써 신라는 당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통일 신라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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