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연 2

광개토대왕 vs 후연: 요동을 둘러싼 패권 전쟁의 서막

4세기 말, 동북아시아는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고구려에는 새로운 정복 군주 광개토대왕이 즉위했고, 서쪽에는 북중국과 요동을 지배하던 선비족 국가 후연(後燕)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두 국가는 결국 요동(遼東)을 둘러싸고 충돌하게 됩니다.요동은 단순한 국경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만주와 화북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고구려에게는 전통적인 영향권이자 확장의 관문이었습니다. 후연 역시 이 지역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광개토대왕이 즉위한 391년 이후, 고구려는 북방으로의 진출을 본격화합니다. 그리고 400년, 후연의 군주 모용성(慕容盛)은 3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합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신속하고 강력한 반격으로 후연군을 격파하였고, 이 전투를 계기로 요동 지역에..

한국사 2025.04.12

선비족의 제국 후연, 고구려와 충돌하다

중국 대륙이 혼란에 빠졌던 오호십육국 시대, 전진(前秦)의 몰락 이후 북방은 수많은 이민족 정권들이 흥망을 거듭하는 시기로 접어듭니다. 이때, 몰락한 전연(前燕)의 왕족이었던 모용수(慕容垂)가 다시 일어섭니다. 그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연(燕)’이라는 국호를 다시 들고 나서며, 384년 후연(後燕)을 세웁니다.모용수는 본래 전진의 황제 부견 휘하에서 복무했던 뛰어난 장수였습니다. 그러나 383년 비수대전에서 전진이 대패하자, 혼란한 정세를 틈타 하북 지역으로 진출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였고, 중산(中山)을 수도로 삼아 즉위하게 됩니다. 이 국가는 국호는 '연'이지만, 앞서 존재했던 전연과 구분하기 위해 후세 사람들이 ‘후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초기의 후연은 강력한 군사력과 행정력을 바탕으로..

중국사 2025.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