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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 군주, 의자왕

의자왕(義慈王, 재위 641~660)은 백제의 제31대이자 마지막 국왕으로, 무왕의 장남입니다. 그는 재위 초기 유교적 정치이념을 바탕으로 국정을 쇄신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백제의 멸망을 막지 못한 비운의 군주로 평가됩니다.의자왕의 즉위와 초기 통치재위 기간: 641년 ~ 660년출생: 미상 (백제)사망: 660년, 당나라 낙양부친: 무왕군사적 업적642년, 신라의 40여 성을 공격하여 대야성을 함락신라와의 전투에서 초기에는 강력한 공세를 펼치며 우세를 점함고구려와의 동맹을 통해 신라를 고립시키려는 시도백제의 몰락나당연합군의 반격으로 백제는 점차 수세에 몰림660년,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사비성이 함락되고 백제 멸망의자왕은 웅진성으로 피신하였으나 결국 항복포로로 잡혀 당나라로 끌..

한국사 2025.05.16

중국 북방을 지배한 유목 제국, 선비족

선비족(鮮卑族)은 고대 동아시아의 유목 민족으로,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만주와 요동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습니다. 흉노의 쇠퇴 후 독립하여 세력을 확장했으며, 이후 중국 북부를 지배하는 여러 왕조를 세우며 동아시아 역사의 중요한 축을 형성했습니다.선비족의 기원출신지: 만주, 요동 지역주요 활동 시기: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6세기언어: 선비어 (알타이계)주요 국가: 전연, 후연, 서연, 남연, 북위, 북주역사와 발전선비족은 흉노의 쇠퇴 후 북방 초원에서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며 등장2세기 후반, 단석괴의 지도 하에 강력한 부족 연맹체를 형성하여 세력을 확장모용선비, 탁발선비, 우문선비 등으로 분화하여 각각 전연, 후연, 북위 등의 국가를 세움탁발선비가 세운 북위는 439년에 화북을 통일하..

중국사 2025.05.16

백제 최후의 충신, 계백 장군의 장렬한 황산벌 전투

백제의 최후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름이 바로 계백(階伯) 장군입니다. 그는 단순한 장수가 아닌, 백제의 운명을 함께한 충신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그가 이끈 황산벌 전투는 백제의 마지막 저항이자 장렬한 최후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계백, 마지막 결사의 길기록에 따르면 계백 장군은 백제의 장수로서 달솔(達率)의 지위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의 출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백제 멸망의 순간까지 충성스럽게 나라를 지킨 장군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계백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바로 660년의 황산벌 전투에서였습니다.황산벌에서의 결사대660년, 당나라의 소정방(蘇定方)이 이끄는 13만의 대군과 신라의 김유신이 이끄는 5만의 병력이 백제로 진격해왔습니다. 이..

한국사 2025.05.14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 – 혼란의 시대를 이끈 지혜와 용기

한국 역사에서 최초의 여성 군주로 기록된 선덕여왕(善德女王)은 단순한 왕을 넘어 시대의 개척자였다. 그녀는 혼란의 시대 속에서 신라를 지키고 번영으로 이끈 강인한 통치자였으며, 불교와 정치를 결합하여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한 인물이었다.성골 여왕의 탄생선덕여왕의 본명은 덕만(德曼)으로,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장녀였다. 그녀는 신라의 최고 귀족 계층인 성골 출신으로, 이는 왕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자만이 속할 수 있는 혈통이었다. 진평왕이 아들 없이 사망하자, 신라의 최고 의결 기구인 화백회의는 덕만을 왕으로 추대했다.이는 당시 성골 남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불교의 힘으로 다스린 왕국선덕여왕은 즉위 초부터 불교를 통한 국정 운영에 집중했다. 그녀는 분황사(634년)와 영묘사(635년..

한국사 2025.05.11

나당연합군의 탄생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 즉 '나당연합군'은 7세기 중반 동아시아의 권력 지형을 바꾼 중요한 동맹이었습니다. 이 연합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 통일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그러나 처음부터 이 동맹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게 된 데에는 복잡한 배경이 있었습니다. 642년, 백제의 의자왕이 대야성을 함락시키는 등 신라를 압박하자, 신라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이에 신라의 실권자였던 김춘추는 당나라와의 동맹을 추진하게 됩니다. 648년, 김춘추는 당나라를 방문하여 태종(이세민)에게 동맹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당나라도 동북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있었기에 양국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 군사 동맹이 성립되었고 이는 곧 한반도 정세..

한국사 2025.05.09

찬란했던 발해, 그 시작과 끝

668년, 수백 년 동안 동아시아를 호령하던 고구려가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 사람들의 꿈은 쉽게 꺾이지 않았습니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던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대조영. 698년, 그는 동모산(東牟山) 일대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세우고, 새로운 나라 진(震)국을 건국했습니다.훗날 이 나라는 국호를 발해(渤海)로 바꾸며 동북아시아에 다시 한 번 강대한 국가를 세우게 됩니다.발해의 영토와 세력 확장발해는 오늘날의 만주 대부분과 한반도 북부, 연해주 지역까지 영토를 넓혔습니다. 특히 동해 연안까지 세력을 확장하면서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발해 사람들은 자신들을 고구려의 후예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수도를 정비하고, 왕실 제도를 마련하며, 중앙 관..

한국사 2025.04.29

신라를 새롭게 연 이방인, 석탈해

신라 초창기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한 인물이 유난히 눈에 띕니다. 바로 신라 제4대 왕, 석탈해(昔脫解)입니다. 석탈해는 신라의 토착 세력이 아닌,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지혜와 품성으로 신라 왕위에 오르며, 나라의 기틀을 다졌습니다.신비로운 탄생과 바다를 건넌 여정석탈해의 출생은 신화적 색채를 가득 담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무려 7년 동안 아이를 품은 끝에, 알을 낳았다고 전해집니다. 왕은 이 알을 불길하게 여겨 바다에 띄워버리도록 명했지만, 궤짝에 담긴 알은 긴 항해 끝에 진한의 해변에 도착합니다.이곳에서 어부의 아내가 궤짝을 발견하고, 석탈해를 정성껏 키웠습니다. 그렇게 그는 신라 땅에 새로운 운명을 품고 태어난 셈이었습니다.신라에서 꽃피운 석탈해의 운명석탈해는..

한국사 2025.04.26

퇴각을 유도한 한 줄의 시 – 을지문덕과 살수대첩

612년, 중국 대륙의 강국 수나라. 황제 양제는 고구려 정벌을 위해 113만에 달하는 대군을 편성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대륙의 패권을 쥐고자 한 제국의 의지, 그리고 작은 나라 하나쯤은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오만이 뒤섞인 침공이었습니다.수나라 군은 탁군을 출발해 요동을 거쳐 평양을 향해 전진합니다. 그 중 30만 명은 평양을 직접 공격하기 위한 별동대로 빠르게 진군했지만, 그 앞에 거대한 장벽처럼 서 있는 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입니다.을지문덕의 '지연전술', 적을 지치게 하다을지문덕은 정면 승부를 피했습니다. 그는 수나라 군이 익숙하지 않은 지형 속에서 병참과 보급에 차질을 겪게 만들며, 계속된 야습과 교란으로 적을 지치게 했습니다.그리고, 결정적인..

한국사 2025.04.25

고구려 최후의 그림자, 연남생

634년, 고구려의 막강한 권력자 연개소문에게는 장남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연남생(淵男生). 훗날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으려 했지만,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권력과 피의 전쟁이었습니다.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권력의 공백연개소문이 사망하자 고구려의 최고 권력 자리인 '대막리지'는 장남 연남생에게로 넘어갔습니다.그러나 두 동생, 연남건과 연남산은 형의 권력 장악에 불복했고, 고구려는 순식간에 형제간 내전 상태로 접어들었습니다.연남생의 아들 연헌충은 동생들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권력은 피를 부르기 시작했고, 연남생은 결국 국내성을 떠나 도망치는 처지가 됩니다. 그는 자신을 몰아낸 고구려를 뒤로한 채, 적국 당나라의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고구려를 향한 칼끝, 연남생연남생은 당나라에 투항하여 고구려 정벌을 ..

한국사 2025.04.25

고구려의 지혜가 흐르던 곳, 요하 전투

612년, 수나라의 황제 수양제는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고자 100만 명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향해 진군합니다. 이 거대한 침공은 단순한 정복 전쟁이 아니었습니다.수양제는 자신을 '중화 세계의 주인'으로 선언하며, 고구려를 굴복시키는 것이 곧 하늘의 뜻이라 여겼습니다.그 첫 관문이 바로, 요하(遼河)였습니다.고구려의 철벽 방어선, 자연이 준 요새고구려는 요하를 방어선으로 삼아 수나라의 진군을 막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요하는 당시에도 강폭이 넓고 유속이 거센 강으로, 대규모 병력이 쉽게 건널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수나라군은 부교(浮橋)를 건설해 강을 건너려 했지만, 고구려군은 기다렸다는 듯 강가에 매복해있었습니다. 화살이 날아들고, 불화살이 다리를 덮치며 수나라 병력은 강을 건너기도 전에 큰 ..

한국사 2025.04.21

연개소문, 역적인가 영웅인가? 고구려 최후의 권력자 이야기

7세기 중반, 당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외세 확장을 꾀하던 그때, 한반도의 북방에는 강대한 고구려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흔히 '고구려 최후의 영웅'이라 불리는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연개소문입니다.강화도에서 시작된 전설연개소문의 어린 시절은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가 강화도 고려산 기슭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지금도 그 지역에는 연개소문이 말을 타고 훈련하던 치마대(馳馬臺), 무예를 익혔다는 오련정(五蓮井) 같은 지명들이 남아 있습니다.영류왕을 제거하다642년, 연개소문은 고구려 정치의 중심에 뛰어듭니다. 당시 고구려 조정은 외세에 유화적인 영류왕과 강경파 귀족들 간의 갈등이 격화되던 시기였습니다. 연개소문은 강경 노선을 내세우며 군사력을 동원해 정변..

한국사 2025.04.19

고구려를 꺾기 위한 수나라의 4번의 도전과 그 실패

6세기 말, 중국 대륙을 통일한 수나라는 국경 너머까지 영향력을 넓히려 했습니다. 그 목표 중 하나가 고구려였습니다.첫 침공은 598년, 수 문제의 명으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완강한 저항과 자연재해 등으로 수군은 큰 피해만 입고 퇴각하게 됩니다.612년, 수 양제는 모든 것을 걸고 제2차 고구려 침공에 나섭니다. 동원된 병력은 무려 113만 명에 달했습니다.수나라군은 음력 3월 15일 요하에 도달합니다. 탁군에서 출발한 병력이 모두 이동하는 데만 40일이 걸릴 정도였지만, 진군 속도는 매우 빨랐습니다.하지만 고구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며, 요하를 건너는 데만 두 달이 걸렸습니다. 병사들은 지치고 식량은 부족해졌습니다.이후 수나라군은 요동성을 포위했지만, 한 달 넘게 이어진 공성전에서도 성을 ..

한국사 2025.04.18